이름을 모르는 엄마에게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17년 전 당신께서 생명을 주시고, 당신이 낳으신 아이, 이후에 지어진 이름은 이지우입니다. 평양 이씨에 지우라는 이름인데, 저는 제 이름이 평범해서 마음에 듭니다. 저는 내년 보육원 퇴소를 앞둔 고 3인데, 오늘은 잠이 안 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엄마에게 편지를 씁니다. 처음 써보는 편지지만 여러 가지 엄마에게 말하고 싶어요. 보육원 동생들을 보면 아주 어린 시기에는 보육원에서 사는 것이 특별한 삶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런데 네 살 때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다른 친구들은 다 있는 엄마라는 존재, 아빠, 할머니, 언니, 동생이라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없는 우리가 아주 특별한 상황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8명이 한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3명의 담당 이모들과 생활하고, 이모들이 휴가일 때는 대체 근무 이모들과 생활을 하였는데, 제가 보육원에 있는 동안 저를 돌봐준 이모들이 많습니다. 일이 힘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요. 제가 거쳐 간 이모들은 대체로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신께서 수호천사를 내려보내 주시는 방법으로 ‘엄마’라는 존재를 주었다고 하던데, 저는 엄마가 없으니, 그 말을 접할 때마다 무척이나 슬펐습니다. 친구들이 무심코 하는 부모님이나, 가족 이야기, ‘너는, 엄마랑 몇 살 차이나니?’, ‘나는 이번 어버이날 선물을 엄마 스카프 샀는데 너는 뭐해 드려?’라는 가벼운 질문들에 대하여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제 사정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에게 제 사정을 다 말을 하기도 그래서 저는 항상 ‘그러게’라는 답을 합니다.
부모가 없다는 것을, 고아원에서 자란다는 것을 밝히는 행동을 우리끼리는 ‘고밍아웃’이라고 합니다.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겠지요. 동성이든, 이성이든 친구를 사귈 때, 적절한 시기에 ‘고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큰 부담입니다. 말을 안 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고, 말을 하면 선입견을 품거나 자격지심이겠지만 무시할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별거 아닌 듯한 ‘고밍아웃’은 고아들 사이에서 큰 용기가 필요한 그리고 어떤 상항에서는 꼭 해야 하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선언입니다.
저는 <보호출산>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보호출산>은 자신의 출산을 숨기고 싶어 하는 산모의 병원 외 출산과 영아 살인을 막기 위해 익명 출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라고 하는데, 저는 엄마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 출산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병원 외 출산을 하려고 하셨나요?’ ‘저의 출생을 숨기기 위해 저를 죽이려고 하셨나요?’ ‘엄마로 인하여 저는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미 저는 세상에 나왔는데 도대체 그 숨기고 싶은 비밀이라는 것이 무엇이었나요?’ ‘저의 존재를 숨겨서 엄마는 진정 원하는 삶을 얻으셨습니까? 원하는 삶을 살고 계시는가요?’ ‘임신과 출산 시 힘들었던 엄마의 상황이 제가 사라짐으로써 엄마의 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저의 출산을 비밀로 하고 계신가요? 비밀로 하셔서 엄마는 무엇인가를 얻으셨나요?’ ‘엄마가 한 행동이 유기가 아닌 권리이고, 저는 버림받은 아이가 아니고 구조된 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생명을 살린 행동이라고 생각하세요?’ ‘엄마, 그래서 엄마는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가요?’ 저는요. 용감하게 살려고 하지만 자주 몰려오는 어쩔 수 없는 서러움과 슬픔의 파도가 있습니다. 저는 백일사진, 돌사진부터 지금은 낯선 사람들과 함께한 어릴 적 사진을 보며 ‘엄마랑 살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엄마가 저를 키우면서 힘들 때도 있었겠지만, 제가 아기일 때는 엄마를 보며 방긋방긋 웃어주고, 조금 커서는 안마도 해주고, 그리고 나이가 들면 엄마랑 나랑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을 거 같아요. 제가 갑자기 편지를 쓰고 싶어진 것은 다름이 아니라, 두 달 전부터 카페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거든요. 월급을 받았는데 보육원 동생들 간식 사주고, 이모들 커피 사드리고, 그냥 갑자기 엄마가 있다면, 치킨을 사서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들었습니다. 저는 양념 후라이드 반반 치킨을 좋아합니다. 엄마는 어떤 치킨을 좋아하는지 궁금합니다. 한평생 그리운 우리 엄마. 제가 사라진 엄마의 인생이 그나마 행복하셨기를 바랍니다. 20**년 **월 **일 지우가 엄마에게
추신: 요리보고, 조리 봐도 <보호출산제>는 아무리 개정을 한다 한들 답이 없다. 유기가 권리가 되고, 보호가 되는 제도는 기존의 국가복지 철학의 근간을 흔드는 것뿐 아니라 이혼을 결정한 출산 앞둔 부부나 장애 아동 관련 유기는, 부모들의 이익을 위한 나름 합리적인 결정이므로 아무리 상담을 강화한다 하여도, 그 유기에 대한 수요를 막는데 효과가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