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아홉의 임신부는 산통이 느껴진 그날 제 손으로 맛있는 밥을 지어먹고 길을 나섰다. 그날따라 택시가 도무지 잡히질 않았다. 버스를 타고 겨우 병원에 도착했을 땐 자궁문이 이미 4㎝나 열려있었다. 그렇게 품에 안은 아기는 자신을 꼭 닮은, 손가락 발가락이 예쁜 아기였다. 산모의 눈에서 또르르 소리 없는 눈물이 떨어졌다. “그동안의 스트레스와 고생이 감동과 기쁨으로 다가와서 갑자기 감정이 북받쳤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아이를 지우라’며 모진 말을 내뱉었을 때부터 그는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공장이나 식당, 택배 집하장 등 일이 보이면 가리지 않고 했다. 9개월 만삭의 몸이 되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을 때도 ‘제발 한 번만 일을 시켜달라’며 취업정보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와 함께 살아나갈 미래를 생각하면 그래야 했다. 지금은 아늑한 보금자리를 마련했지만, 윤민채(26)씨가 아들(6)과 함께 살아온 7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겨웠다. 어떻게든 스스로 버텨보려 했지만 아이를 낳은 지 5개월만에 모아둔 돈은 뚝 떨어졌다. 결국 미혼모 공동생활시설과 모자원(미성년 자녀를 둔 한부모가족 보호시설) 신세를 지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여러 자격증(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병원코디네이터)을 땄다. 돈이 없어 한부모가정지원센터에서 받은 케이크로 아이의 끼니를 때운 적도 있었다. 윤씨는 고생도 많았지만 그만큼 자신이 일궈낸 가정이 자랑스럽다. 그럼에도 윤씨 모자에게 우리사회는 여전히 ‘비정상가족’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결혼제도 안에서의 출산과 육아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뿌리깊은 가족주의 탓이다. 더욱이 결혼 없는 성관계의 책임을 남녀에 다르게 묻는 이중적 성규범은 미혼모를 두 번 울린다. ‘저출산은 국가적 위기’라며 출산을 장려하면서도, 미혼모와 그의 가족을 차갑게 바라보고 방치하는 모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윤씨는 유튜브 ‘한부모성장TV’를 통해 한부모 응원 활동을 하고 있다] ◇ 아이 키우겠다는데 ‘무책임하다’비난 …입양 종용으로 이어져 미혼모들은 스스로를 ‘아이를 선택한 사람’ 이라고 말한다.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결혼을 하진 않았지만, 생명을 책임지고 키우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무책임하다’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윤씨는 과거 취업 면접 자리에서 훈계를 듣기도 했다. “처음 보는 면접관이 다짜고짜 ‘진짜 책임감 없다’ ‘어떻게 그 나이에 생각도 없이 낳았느냐’는 비난을 했다”며 “단지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고 했을 뿐인데 무책임하다는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홀로 자녀를 키우는 건 여느 한부모가족이나 매한가지이지만, 이런 편견은 유독 미혼모만을 겨냥해 작동한다. 중3 아들을 둔 김민정(45)씨는 “사람들이 미혼부를 보면 ‘젊은 사람이 안쓰럽고 대견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미혼모에게는 측은한 시선은커녕 비난부터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건 미혼모를 ‘어린 나이에 사고친 청소년’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고정관념 탓이라는 게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같은 싱글맘이라도 유독 미혼모만 ‘문란하다ㆍ무책임하다’는 말을 듣는다”며 “그 사람이 살아온 배경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단지 혼외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만으로 비도덕적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렇다 보니 미혼모들은 출산을 앞두고 ‘입양 보내라’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 양육을 반대하는 가족은 물론이요, 미혼모지원시설에서조차 이 같은 권유를 듣는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과거에는 입양기관이 미혼모지원시설을 운영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혼모에게 입양을 종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며 “해외입양을 가더라도 양부모의 학대를 받거나 국적취득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단지 결혼가정에서 아이가 더 잘 자랄 거란 환상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2011년 한부모지원법 개정으로 입양기관의 미혼모시설 운영은 금지됐지만 입양 권유가 사라진 건 아니다. 네살 딸을 키우는 최혜정(42)씨는 “임신 마지막 달까지도 시설에서 ‘입양을 보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 경력단절ㆍ돌봄공백에… 점점 멀어지는 ‘안정적 직장’ 출산으로 가장이 된 미혼모는 아이와 함께 살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김도경 대표는 “아이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엄마의 자립의지가 필연적으로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한 의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경력단절이라는 큰 산이다. 출산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직장이나 학업을 중단하면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미혼모 가정 300가구를 조사한 결과, 임신 전 취업 중이던 미혼모 가운데 87.1%가 임신으로 인해 퇴직을 했다. 임신 당시 학업 중이던 미혼모의 59.5%도 학업을 중단했다. . 미혼모가정을 위한 공동생활시설에서는 미혼모의 경력개발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향초제작 같은 취미성 교육이라 미혼모들의 다양한 직업교육 욕구를 충족하긴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때문에 많은 미혼모들이 고용노동부의 직업훈련프로그램인 ‘취업성공패키지(취성패)’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취성패는 미혼모만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보니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미혼모들이 이 과정을 순탄히 마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미혼모들은 급한 상황에 도움을 청할 곳 없는 경우가 많아 직업 선택과 직장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출산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미혼모가 부모, 형제 등 원(原)가족을 비롯 기존의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면서, 육아 시 돌발 상황에 대한 도움을 요청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조사에서 미혼모가 직장을 그만둔 요인으로 편견(21.3%)보다 돌봄공백(41.0%)이 더 크게 작용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때문에 취업의 어려움이나 수입 제약을 감수하면서도 미혼모들은 자녀 돌봄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다. 고1 딸을 키우는 김미선(41)씨 역시 홀로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학습지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는 일을 하청 받아 재택근무로 생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돌봄공백을 완전히 채우진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아이가 어릴 적 아침부터 열이 나는데 원고 마감날이라 집에서 돌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보낸 적이 있다”며 “당장 6시간 맡길 곳이 없어 아픈 애를 등원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 자립의지 되려 꺾는 복지정책 그나마 2007년 한부모가족법이 제정되고, 저소득 한부모가족 지원사업은 물론 아이돌봄서비스 등 복지제도가 신설되면서 미혼모들을 위한 정책 지원은 확대됐다. 하지만 오히려 정부의 지원책이 미혼모의 자립 의지를 꺾는 경우도 있다. 여성가족부의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 지원사업이 대표적이다. 저소득 한부모가정의 만 14세미만 아동에게 월 20만원(24세미만 청소년 한부모의 5세 이하 아동에게는 5만원 추가 지원)을 지원하는 제도인데, 소득이 중위소득의 52%(현재 2인가구 기준 월 151만1,395원) 이하여야 신청할 수 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직장에서 주 40시간동안 한 달간 일했을 때 버는 돈이 174만5,150원(주휴수당 포함)인 만큼, 아르바이트를 하는 미혼모조차 조금만 더 일해도 기준에 탈락하는 셈이다. 9살 딸을 둔 성은주(가명ㆍ30)씨도 지난해 주말 아르바이트를 추가로 구했다가 소득기준보다 3만원정도 더 벌었다는 이유로 양육비가 끊겼다고 한다. 성씨는 “소득이 적을 땐 오히려 교육비와 병원비, 학용품비 등 크고 작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소득이 조금 늘었다는 이유로 그런 지원들이 끊기면서 오히려 살림살이가 빠듯해졌다”며 “아르바이트 조금 더 했다고 갑자기 지원을 끊는 게 정말 자립을 돕는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제도가 있어도 이를 소개하고 지원하는 일선 공무원들의 관련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혼모가 출생신고를 하러 갔을 때 ‘왜 아빠는 없냐’고 되묻는 건 흔한 일이다. 윤민채씨는 “생활고로 지원책을 알아보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아갔다가 ‘여기는 나이든 분들만 도와주는 곳이다’ ,‘애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잘해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례관리팀장은 “미혼모의 출산ㆍ양육을 위한 기본지원은 물론, 출산으로 인한 긴급생계비 지급이나 출생증명서 없는 아이의 출생신고 등 다양한 사례에 대한 지자체 복지담당자들의 이해수준이 제각각”이라며 “미혼모가정이 자신의 터전에 정착하는게 최선인만큼 미혼모시설이 아닌 지자체 중심의 복지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원문보기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