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2236명. 의료기관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없는 아동, 이른바 ‘유령아동’의 수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3월부터 보건복지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감사 과정에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의료기관에서 출산 이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신고 영유아가 2236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감사원은 이 중 위험도가 높은 23명을 표본 조사한 결과 최소 아동 3명이 숨지고 1명은 유기가 의심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시 아파트 냉장고 안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됐고, 친모가 영아살해 혐의로 체포됐다. 친모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미 남편과 사이에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후 정부는 출생 직후 B형간염 예방접종을 위한 ‘임시신생아번호’만 있는 영유아 2236명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한부모 관련 단체 등은 ‘유령아동’은 우리나라 출생신고제의 문제점 때문에 발생했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상 결혼한 부부는 엄마와 아빠 모두 출생신고를 할 수 있지만, 결혼 제도 밖 출산의 경우 엄마가 하는 것이 원칙이다. 홀로 출산‧육아를 감당하는 미혼모·미혼부에게 출생신고의 벽이 높다는 문제도 있다.
부모는 자녀가 태어나면 출생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출생지 관할 구청‧읍사무소‧면사무소 또는 동 주민센터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부모의 출생신고 없이는 아기의 존재 유무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가의 관리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의료‧건강‧복지‧교육 등 각종 서비스에서 배제된다.
현행법상 1개월 내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다 해도 5만 원 이하의 과태료 외에 다른 처벌은 없다. 유령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오래전부터 ‘출생통보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출생정보를 직접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는 것을 말한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2236명의 유령아동이 발생한 것은 출생신고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1차적으로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보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는 지난 24일 성명서를 통해 “아동의 출생 사실과 출생신고 여부를 확인하고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을 지방자치단체 등이 직권으로 기록하는 출생통보제가 진작 마련돼 있었다면 5년 전 아동 살해 사건이 이제야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미 갖고 있는 통계만으로도 지켜낼 수 있는 아동을 수년간 놓친 이 사안은 명백한 국가 책무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등 의원들이 각각 발의한 출생통보제 관련 법안이 15건 계류된 상태다. 출생통보제 관련 법안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번번이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이 발생해서야 여야가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면서 지난 28일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29일 법사위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 30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인 정점식 의원은 소위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정안은 의료인이 진료기록부에 출생신고에 필요한 출생 정보를 기재하도록 하고, 의료기관장이 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통보하도록 한 것”이라며 “심평원은 시‧읍‧면장에게 이를 통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혼인 외 출생의 경우 출생신고 자체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가 주민센터를 직접 방문하기도 쉽지 않고, 임신과 출산, 육아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 심각한 것은 미혼부의 경우다. 가족관계법상 ‘혼인 외 출생자’의 출생신고는 엄마가 하는 것이 원칙이다. 2015년 개정된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미혼부도 출생신고가 가능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모의 이름·등록기준지·주민번호를 몰라야만 예외적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생모의 정보를 ‘모른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재판을 받아야 하고, 그 과정이 길게는 4~5년씩 걸린다는 것이다. 미혼부가 가정법원에 제출할 서류는 친모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사유를 소명할 자료와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이다. 그 기간 동안 아이는 국가 의료보험과 양육비 지원 등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미혼부들은 가족관계등록법이 아이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신청했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또 국회에는 2025년 5월까지 법 개정을 주문했다. 미혼모‧미혼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게 만드는 환경이 가장 근본적 이유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019년 발표한 ‘임신기 및 출산 후 미혼모 지원방안’ 이슈페이퍼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미혼모 다수는 임신기와 출산 후 보호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임신기‧출산 후 태아와 산모의 건강지원 및 미혼모 지원 정보 전달 체계화, 주거지원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출산통보제의 보완책으로 보호출산제도 함께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미혼부모들의 출산을 더욱 음지화 시키는 정책”이라며 “혼인 여부나 가정의 형태 등에 관계없이 출산과 양육, 돌봄이 부모 스스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영나 대표도 “미혼모에 대한 차별을 견디다 못해 출산 사실 자체를 숨겨야 하는 상황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며 “임신기 여성에 대한 지원체계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