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모의 영아살해 뉴스로 떠들썩하다. 정부가 출생 미등록 영·유아 전수조사에 나섰고, 내년 출생통보제 시행에 맞춰 보호출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선의에서 나온 움직임이다. 그런데 이런 선의가 비혼모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종종 간과된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를 지난달 20일 그가 법무사로 일하는 서울 강남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 대표는 “정부가 출생통보제에 이어 보호출산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정작 위기임신 여성을 위한 지원체계는 텅 비어 있다”면서 “오랜 민간 주도 입양산업으로 인해 비혼모가 ‘무책임하다’는 사회적 편견이 강화됐고 아동보호 정책은 공백 상태였다. 아이가 ‘뿌리를 알 권리’를 침해받지 않고 엄마와 함께 자라려면 극단 처방인 보호출산제보다는 지원체계를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가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의 한 법무사법인 사무실에서 우리 사회의 미혼모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 정부의 출생 미등록 영·유아 전수조사에서 열에 하나꼴로 사망이 확인됐습니다. 가해자의 상당수가 비혼모일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어요.
“결국 오해로 드러났죠. 최종 집계 결과 2123명 중 사망한 249명 가운데 범죄 혐의로 검찰 송치가 7건, 그중에 비혼모가 용의자인 사건은 2건에 불과했습니다. 조사 초기에 베이비박스에도 가지 않았던 아동들은 살해·유기되거나 불법입양됐을 것이라는 어림짐작이 난무하게 됐던 거죠. 비혼모를 집에서 혼자 애를 쑥쑥 낳고 살해도 쉽게 하는 별난 존재로 여기는 편견이 증폭되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임신 10개월간 정부 지원이라곤
국민행복카드 의료비 100만원뿐
중간이 텅 비어있는 상태로 남아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더라도
충분한 상담과 지원 있었다면
산모의 극단 상황 막았을 것
- 그 와중에 10년 넘게 진전 없던 ‘출생통보제’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건 성과입니다.
“아동의 출생 사실을 의료기관이 지방정부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해 출생등록 책임을 국가가 분담하게 됐습니다. 아이의 존재를 공적으로 증빙하면 사회적으로 지원하고 범죄로부터 지킬 수 있죠. 그동안 주요국 가운데 한국만 안 하고 있었어요. 의료계 반발도 큰 이유였고, 아이가 돌을 무사히 넘겨야 부모가 출생신고를 해온 문화적 영향도 있겠죠. 한국의 영아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낮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간 통계에 안 잡혔기 때문입니다.”
- 더불어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출산기록을 꺼리는 위기산모들이 병원을 회피하면 영아 유기·살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입니다.
“보호출산제는 최후의 극단적 처방일 뿐입니다. 위기산모 지원을 위한 여러 단계의 논의를 건너뛰는 건 위험해요. 도입 필요성의 근거로 인용되는 논문 ‘한국 영아살해 고찰’(2021년)을 볼까요. 46건의 영아살해 가운데 40건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서였다’는 게 이유입니다. 이 중 ‘부모한테 혼날까봐’가 8건,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할까봐’가 10건입니다.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더라도 충분한 상담과 지원만 있었다면 산모가 공황 상태에 빠져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현재 임신 10개월간 정부 지원이라곤 100만원짜리 국민행복카드 의료비 지원밖에 없습니다. 중간이 텅 비어 있는 거죠.”
- 프랑스에서도 익명출산제가 운영되고 있지 않나요.
“우리와는 결이 다릅니다. 주 이용자는 이슬람계 여성들입니다. 혼외출산을 하면 소속 집단에서 명예살인까지 당할 수도 있는 극단적인 상황이라 ‘X’(엑스)라는 익명이 필요한 거죠. 프랑스는 지난해 태어난 아이 10명 중 6명 이상이 혼외출생입니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정부가 모자를 지원한 지 이미 오래이고, 부득이한 경우에 보호출산을 보장하는 겁니다.”
- 아이 키울 형편이 안 되는 부모가 아기를 놓고 가는 베이비박스가 영아의 목숨을 구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이 살해하는 엄마와 베이비박스 찾아가는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봐요. 어떻게든 아이를 살려보겠다는 엄마에게 적절한 사회적 지원을 제공한다면 아이를 버리지 않을 거예요. 베이비박스는 ‘나도 노력했다’는 자기 위안에 유기를 더 쉽게 생각하게 되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비혼모들을 위한 정부 지원체계를 찾기 어려우니 베이비박스로 몰리는 겁니다. 보건소마다 상담만 배치됐더라도 이렇진 않을 겁니다. 정말 이건 국가의 책임이죠.”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에 위치한 베이비 박스. 한수빈 기자
민간 주도 입양산업 활성화에
‘비혼모 무책임’ 편견 강화되고
아동보호 정책은 공백 상태
아동의 ‘뿌리 알 권리’ 보장하고
비혼모와 아동 행복 위해서는
‘헛바퀴’ 가족정책 바로 잡아야
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미국인 리처드 보아스 박사가 2007년 설립했다. 1988년 한국에서 생후 4개월 된 여자아이를 입양해 키운 그는 처음엔 입양 옹호론자였다. 그러나 2006년 한국 방문에서 사회적으로 배척받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비혼모들이 아이를 낳기도 전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비혼모 권리운동에 나섰다. 그는 2010년 한 매체 인터뷰에서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키울 권리가 있다”면서 “왜 한국 같은 부자 나라가 비혼모를 돕지 않는지, 왜 비혼모는 무능력하고 엄마 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비난받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지난 10여년, 우리 사회는 얼마나 진전했을까.
- 네트워크를 찾아오는 비혼모들은 어떤 분들입니까.
“20대 여성이 비율상 가장 많습니다.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드립니다. 10대의 경우 숫자는 많지 않아도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주거 문제와 학교 교육, 자격증 취득 문제를 함께 해결하면서 아기 목욕시키고 젖 먹이는 법까지 하나하나 가르칩니다. 계획에 없던 임신인데도 아이를 야무지게 잘 키우기도 하지요.”
📌[플랫]14명의 비혼모 작가가 쓴 ‘결혼은 모르겠고, 아무튼 아이는 있어요’
- 비혼모 권리운동은 해외입양과 뿌리를 같이한다고요.
“한국은 6·25전쟁 이후 70년간 20만명의 아이들을 선진국에 해외입양 보냈습니다. 민간 입양기관들이 비혼모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아이를 송출했죠. 그런데 성년이 된 입양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비혼모들에게 ‘아이를 입양 보내지 말고 키워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탯줄로 열 달간 긴밀하게 연결됐던 엄마와 분리된 경험은 젖먹이 아기에게 지울 수 없는 평생의 상처로 무의식에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입양된 줄 모른 채 좋은 양부모 밑에서 자라는데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이유 없는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또 다른 입양인의 경우 부모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부모에게 온전하게 수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고 해요. 인생이 고비에 부딪힐 때, 입양인들은 자신의 친부모를 찾지 못하면 그걸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좌절감이 든다고 합니다. 좋든 나쁘든 부모는 자식의 삶에 이정표가 되는데, 이것이 없다는 것은 헤아리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가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의 한 법무사법인 사무실에서 우리 사회의 미혼모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 해외입양을 옹호하는 입양인도 있던데요.
“어린이로서 기억이 있을 때, 심지어 빈곤이 싫어서 본인 의지로 한국을 떠나 입양 간 경우에는 그럴 수 있겠죠. 해외입양된 갓난아기들은 생모에 대한 기억은 물론이고 입양기관에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으니 경우가 다릅니다. 부모를 찾고 싶어도 방법이 없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입양인이 친생부모를 상봉하는 데 성공하는 비율은 5%대에 불과하다.
- 비혼모에 대한 차별이 극심하니 입양이란 선택으로 내몰린 것이군요.
“아뇨. 그 반대입니다. 해외입양이 활성화되면서 비혼모에 대한 차별이 만들어진 겁니다. 입양산업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는 비혼모 양육보다는 입양이 낫다’는 논리를 정당화한 거죠. 6·25전쟁 이전에도 비혼모는 있었지만 공동체 안에서 아이를 같이 길렀습니다. 집마다 대가족이었고 골목 지나가는 ‘업둥이’ 불러다가 밥 먹이고 같이 지내던 시절이었죠. 1950~1960년대 주한미군과 내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미국으로 보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칩시다. 그런데 1970~1980년대 입양산업이 한 명당 수천달러 수수료를 받는 돈벌이가 됐고, 아이 키우려는 비혼모를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고 손가락질하는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다행히 지난달 국회에서 입양 절차 전반에 걸쳐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입양 3법’이 통과됐다. 국가가 친생부모가 아동을 양육할 수 있게 권장하고 지원하도록 한 것이다. 오 대표는 “해외입양이 활성화된 나라에서는 아동보호 정책이 발달할 수 없는데, 우리는 기록적인 저출생 문제 등과 겹치면서 지금에서야 하나씩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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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보호출산제 도입 이전에 비혼모에 대한 지원이 우선인 거군요.
“아이의 장래 행복을 위해서도 최선입니다. 친부모가 아이를 숨기려고 익명으로 절연한 것과 그래도 출생신고하고 최선을 다하다가 입양 보낸 것은 성장 과정에서 차이가 커요. 아동의 ‘뿌리를 알 권리’는 침해돼서는 안 됩니다. 저희 단체에서는 엄마가 키우다가 형편이 정말 어려우면 위탁가정에 1~2년 보내고 주말마다 아이 보는 방법도 있다고 설득합니다. 정부에서는 보호출산제를 도입하려면 익명화에 필요한 시스템을 갖추는 데 적잖은 돈이 든다고 합니다. 그 예산으로 비혼모들 임신 초기부터 상담하면서 아이를 키우겠다는 어려운 결심을 먼저 지원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비혼모들은 그저 평범한 여성이자 엄마입니다. 그런데 자기 아이를 죽이는 대단히 특이한 가상의 존재로 상정하니까 정책이 가야 할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준비했던 질문 대부분이 비혼모를 ‘도움이 필요한 특별한 사람’으로 상정한 선의의 차별이었음을 깨달았다. 그저 그들이 자신의 삶을 살도록 존중하고 지원하면 되는 문제였다. 오 대표는 “비혼모를 가까이서 만나본 적이 없었으니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0.78명을 기록한 합계출산율을 극복하려면 한국 가족정책이 ‘부-모-자녀’의 가부장적 핵가족이라는 틀을 넘어서야 한다고 한다. 그동안 가족정책이 헛바퀴를 돈 것은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채 통계와 편견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은 아닐까.
■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2007년 미국인 리처드 보아스 박사가 설립한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4대 대표로 2018년부터 일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대와 30대에 구로 지역에서 사회단체 활동을 하다 2006년 법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전국여성법무사회 활동을 하던 중 지원사업을 통해 비혼모들과 인연을 맺었다. 대한법무사협회 부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극단 상황 비혼모엔 임신중지가 나을 수 있는데…그 권리 보장 안 돼 문제”
최근 영아 살해 및 유기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위기임신에 따른 아기들의 비극을 막자는 취지에서 보호출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사실 이 모든 극단적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안전한 임신중지다. 하지만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이듬해 말까지 법 개정을 주문했는데도 국회에서는 4년째 제도 정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임신중지 시기 등을 놓고 이견만 팽팽하다. 임신중지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회색의 영역에 놓였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소속 활동가들이 2023년 4월 9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광장에서 낙태죄 폐지 2주년을 맞아 국가에게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할 것을 유지한 집회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영아를 살해할 정도로 위기에 놓인 비혼모라면 미리 임신중지를 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그런데 임신중지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초기 임신을 안전하게 중단할 수 있는 약물 ‘미프진’은 전 세계 주요국에서 사용 중이지만 국내에는 지난해 끝내 도입이 무산됐다.
위기임산부들은 성분이 불명확한 약물을 복용하는 위험을 감수하거나, ‘부르는 게 값’이 된 낙태 수술비용이 없어서 출산 후 아기를 살해하는 재앙적인 선택을 한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청소년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안전하게 행사하는 방법을 모른 채 임신하고 당황한다. 사회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갖는 권리는 인정하지 않고, 그렇다고 비혼모로서 아기를 기를 수 있는 환경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모성에 대한 책임만 묻고 있는 것이다. 오 대표는 “관련 입법을 서둘러 여성들이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신중지라는 건강권]낙태죄 폐지됐지만…의료 서비스로 자리잡지 못한 ‘임신중지권’
▼최민영 논설위원 min@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