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한부모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나올 때이다.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 김 은 희 미혼 부모 당사자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난처한 경우는 미혼부모 당사자 단체가 피해자로서 사회적 상처와 경험을 드러냄으로서 그에 대한 사회적 보상 또는 물적 보상을 요구하는 단체라고 정체성을 규정할 때이다. 단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미혼부모 당사자 단체를 만들어 미혼부모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같은 경험을 공유한 여성들이 공적인 공간을 만들어 그런 공적 관계를 통해 사회적 인식과 제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데 있다.
일상에서의 그런 진정성 있는 사회제도 개선의 목소리들은 세상일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사람들 눈에는 과격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나 싶다. 그러기에 미혼부모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상처와 보상을 맞바꾸는 행위로 간주하는 듯하다. 이 또한 기존 가지고 있던 고정된 사유의 하나임을 인정하고 당사자의 일상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를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고착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양육을 선택한 미혼부모들이 건강하게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법적 제도를 내어놓아야 근본적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뒤돌아보면 대구협회가 생기고 삼여 년 동안 여러 미혼부모 토론회와 포럼에 참여해왔지만 늘 그 주제는 어떻게 미혼부모가 사회적 편견과 제도 속에서 핍박되어지는지 혹은 유아유기 특히 베이비 박스가 옳은지 그른지 입양이 옳은지 그른지 하는 지점에서 더 나아간 담론이 형성되고 있지 못한듯하다. 피해자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사회적 보상을 받는 대신 그 피해자로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을뿐더러 당사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쉽다는 함정이 있다. 피해자에서 사회적 구성원으로 변화하기 위하여 법적인 양육제도 개선이나 법적 장치를 원하는 미혼부모의 욕구는 묻혀버리고 양육 권리와 영아유기에 관한 이야기만이 되풀이되고 있다. 미혼부모에 대한 다양한 시선들이 함께 녹아나야 미혼부모가 사회 속으로 건강하게 복귀할 수 있음에도 피해자라는 관점에서 한 치도 나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당사자 단체로서 크게 반성되는 부분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지점은 미혼부모의 양육환경에 대한 지원정책이 없으면 입양과 영아유기의 현실이 변화되지 않을 것이란 것이다. 미혼부모 양육환경 개선에 대한 법적 지원정책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도록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각종 저 출산 대책과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재앙을 피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소득에 상관없이 난임 부부에게 지원되는 정책과의 비교나 다문화 가정에 지원되는 결혼비용 지원정책, 지역별로 시행되는 출산 지원금 정책, 시설과 위탁가정, 입양가정에 지불되는 다양한 지원정책에 비하여 상처받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미혼부모에 대한 차별화된 정책은 없다시피 하다. 미혼임산부와 아동의 일정한 연령대까지의 법적 지원책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한 발짝 나아간 담론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미혼부모의 무기력한 담론으로만 머물 것이다. 개인들의 판단이 중요한 정책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기에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토론을 통한 합의점 도출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가 중심이 되지 않고서는 미혼부모가 안고 있는 미혼으로 임신해서 아이를 양육하기까지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되기 힘들다. 국가가 이러한 제도적 지원책을 만들고 시행될 수 있도록 한 발짝 더 나아간 담론이 형성되어야 한다. 특히 미혼 임부에 대한 지원은 두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에 시급히 시행될 수 있도록 사회적 담론을 끌어내야 한다.
옛 이야기 중 객승이 한겨울에 떠돌다 한 사찰에 머물게 되어 찬 방에서 자게 되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방이 따뜻해지지 않아 창으로 내다보니 불이 벌겋게 피어올라 있어 참고 자려고 했으나 너무 추워 아궁이로 직접 나가보니 사찰 주지승이 장작을 아끼려고 창이 보이는 자리에 초를 켜놔 방은 여전히 냉골이나 초만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란 일화가 떠오른다. 지금 열심히 미혼부모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입구에서 벌겋게 초만 태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어 봐야한다. 단 한사람의 생명도 소중히 하는 삶이 인간 사회가 지향해야 할 마지막 목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