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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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미혼모’가 있는 풍경, 그 변화와 변주(2025년 1월 23일)2025-01-24 15:54
작성자 Level 10

#장면 1, 보이지 않았던 존재

 

2008년 여름 미국의 안과 의사로 은퇴한 리차드 보아스 박사는 한국의 미혼모를 돕고자 한국에 사무소를 내고 책임자를 뽑았다.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인지 잘 몰랐지만 당시 한 여성단체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던 나는 유사한 일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지원서를 냈고 최종 선발되었다. 한국 사무소는 곧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라는 공식 명칭을 갖게 되고 내게는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이 주어졌다.

 

일을 시작하자 첫 번째 충격이 찾아왔다. 도무지 어디를 가야 미혼모를 만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미혼모 지원 정책 토론회를 가도 학자, 공무원, 시설 관계자뿐이었다, 간혹 미혼모 당사자가 사례자로 나왔지만, 이름도 성도 없이 사례자 1 또는 미혼모 1이 그들의 이름이었다. 때로는 칸막이 뒤에서, 때로는 조명이 꺼진 어두운 공간에서 발표를 했기에 누구인지 식별할 수 없었다. 사진 촬영 금지는 사례자가 나오는 토론회에서 늘 보는 경고문이었다. 발표가 끝났다 해도 사적으로 말을 걸 수 없었다. 그들을 보호하는 시설 관계자의 허락 없이는 말이다.

 

여성단체에서 일하며 다양한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을 만났지만 이렇게 얼굴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외부인과 자유롭게 만날 수도, 대화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두 번째 충격이었다. 차별이라고 간단히 말하기엔 더 복잡한 깊은 수치심과 비난 그리고 성도덕을 위반했다는 낙인이 그들에게 찍혀 있었다.

 

마지막 충격은 미혼모가 처한 현실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미혼 임신을 한 여성은 거의 모두 직장, 가족, 사회로부터 단절되어 시설에 입소하는 구조에 놓여 있었다. 게다가 시설 입소를 위해 입양 서약을 강요당하기도 했으며, 시설에서는 엄격한 규율 하에 단체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편 입양 보내지는 아기 대부분은 미혼모의 아기였다. 그리고 미혼모는 어떤 선택을 해도 비난을 피할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가령, 아기를 입양 보내면 비정한 어머니, 아기를 선택하면 이기적 어머니가 되었다. 미혼 임신에 똑같은 책임이 있는 친부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사회에서 미혼모는 입양을 선택하면 죄책감에, 양육을 선택하면 지원이라고는 거의 없는 상태에서 고단하고 외로운 독박 육아에 시달리고 있었다. 청소년 미혼모이건 성인 미혼모이건 다를 바가 없었다.

 

총체적 난국과 같은 상황을 지켜보며 나는 90년대 후반 장애인 운동에서 시작되어 시민운동 전반에서 활발하게 회자되던 우리 없이 우리에 대한 것은 없다 Nothing about us without us”라는 구호가 떠올랐다. 보아스 박사와 당사자 조직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할 때 마침 시설을 퇴소하고 미혼모 권익 운동을 하려는 용감한 미혼 엄마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들은 미혼모를 도와야 한다고 시설장님과 함께 국회의원도 만나고 했지만 좋아지는 건 우리들의 삶이 아니라 시설 뿐이었다는 이유에서 당사자 운동을 시작하고자 했다. 미혼모 당사자와 또 다양한 시민단체와 해외 입양인들과 연대하며 네트워크를 확장해 갔다. 미혼모 가정을 다양한 가정의 한 형태로 인식시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에 보아스 박사는 한국여성재단에 양육미혼모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원 사업기금도 만들었다.

 

당사자 운동에 뛰어든 미혼 엄마들은 밤낮을 안 가리고 언론 인터뷰 요청에 적극 임했고, 더이상 칸막이 뒤에 숨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5만 원이던 저소득층 한부모가정 아동양육비는 10만 원으로, 15만 원으로 조금씩 올랐다. 입양에서 양육 선택으로의 전환이 서서히 일어나던 즈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사단법인이 되었다. 보아스 박사는 대표직에서 물러났으며, 나 역시 4년간의 활동을 마쳤다. 2012년의 일이었다.

 

#장면 2,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의 부조화

 

그리고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얼마나 변했을까. 얼마 전 TV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여성이 결혼은 안 했지만, 세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미혼모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예전에는 당사자 활동가라 해도 몇 명을 제외하고는 인터뷰 기사에는 모자이크 처리나 뒷모습만 공개되기를 원했다. 그런데 남녀매칭 프로그램에 나와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하다니. 정말 세상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정책도 변해있었다.

 

저소득층 한부모가족 아동 양육비는 월 23만 원, 청소년 한부모에게는 월 37만 원으로 상향되었으며, 25세에서 34세까지 청년 한부모라는 구간도 생겨 월 5~10만 원을 추가로 지급했다. 미혼모보호시설, 중간의 집, 모자원 등으로 나뉘었던 시설 체계는 출산지원시설, 양육지원시설, 생활지원시설로 나뉘었고 입소 연령이나 기간도 많이 완화된 것으로 보였다. 이것으로 된 것일까?

 

<나는 솔로>에 등장했던 한 미혼모의 경험을 보자.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기가 생겼다. 남자는 변했다. 낙태와 입양을 강요했고 친부 인지도 양육비 지급도 거부했다. 이 여성은 이후 자신의 경험을 본인 SNS에 공개했다. 내용은 이랬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신체적 변화, 휴직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 등으로 힘든 임신 기간을 보냈다. 보호자 없이 고통스러운 출산 과정 속에 홀로 진통을 겪으며 모든 이들로부터 축복받는 다른 산모와 아기를 보며 또 한 번 좌절과 절망감을 느꼈다. 직장에서 미혼인 상태로 임신을 알려야 한다는 사실과 입덧, 부모님과 주변의 반대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질병 휴직을 하였다. 모든 걸 정리하고 작은 방을 얻어 아기를 키웠다. 아기 걸음마를 시키지 못할 정도로 작은 방이었다. 피고인은 본인이 한 행동의 결과물인 아기를 위해 책임과 도리를 다하길 원한다.”

 

분명히 달력은 현재인데 갑자기 과거로 돌아간 듯했다. 미혼 임신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남자 이야기며, 가족과 직장이 있음에도 모든 것과 단절되어 홀로 출산하고 양육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등이 마치 누군가 리플레이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 뭐가 변했을까? 최근에 미혼 임신과 출산에 대한 낙인은 과거에 비해 완화되고, 미혼모 스스로도 더 당당해졌다. 그러나 양육수당이 늘었다 해도 여전히 저소득층 (중위소득 63%) 중심이다. 청소년 미혼모 지원은 두터워졌으나 성인군에 속하는 미혼모는 더 많다. <나는 솔로> 출연 여성 역시 임신과 출산 당시 31살였다. 청년 미혼모 구간이 만들어져 추가 양육 수당을 받는다 해도 5~10만 원이 전부다. 시설에 입소할 수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단칸방이라도 아기와 둘이 독립적으로 살길 원한다. 지금 20-30대는 물론 젊을 층일수록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시설보다는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더 원할 것이다. 특별한 정신적, 신체적 어려움이 있어 특수한 돌봄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요컨대 미혼모는 과거보다 당당해졌으나 여전히 필요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공공주택 입주, 세금 및 각종 혜택 등은 신혼부부나 정상가족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여기에 복지병이니 세금충이니 하는 말은 이들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낙인이 되었다.

 

#장면 3, ‘미혼모의 변주, ‘위기 임산부의 등장

 

이러한 와중에 복병이 나타났다. “위기 임산부라는 신종 개념이다.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어려움이 있는 위기 임산부는 신분을 감추고 출산 후 친권을 포기하고 아기를 두고 떠나도 병원비를 포함 어떤 법적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보호출산제)이 작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 보건복지부는 20억의 예산을 책정하여 전국 16개소의 위기 임산부 상담소를 만들고 지하철, 병원, 약국, TV, 온라인 배너 등을 통해 보호출산제를 적극 홍보했다. 임산부가 임신 기간 받을 수 있는 의료비 지원은 여전히 작년과 동일한 100만 원인데 올해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이 입양이나 아동보육시설에 배치되기까지 돌본다는 명목으로 아이 한 명당 매월 100만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아기가 태어난 원가족을 알고 원가족의 보호를 받고 자랄 수 있는 권리는 위기의 원인은 돌보지 않고 위기의 결과만을 처리하려는 정부에 의해 무참히 침해되었다.

 

여성이 임신-출산-양육에 받는 지원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미혼모의 경우 양육 미혼모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양육의 고단함에 뒤늦게 잘 키워오던 아기를 포기하거나 양육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위기임산부라면 보호출산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고 말이다. 보호출산을 더 많이 선택할수록 아기를 포기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여성과 엄마에게 버려진 아이라는 사실로 인해 고통받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평생 짊어지고 성장할 아동의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처럼 익명 출산제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다르다. 출산 및 임신 중단 등에 소요되는 모든 의료비는 무상이다. 만약 위기 임산부가 익명 출산을 선택했을 경우 입양이 결정될 때까지는 출생등록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아기를 양육할 수 있다. 아기를 입양 보냈다 해도 2개월 내 원한다면 아기를 돌려받을 수 있다. 이후 정부는 이들을 3년 간 지원하며 관리한다. 이러한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는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므로 익명 출산에 대한 근본 원인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는 권고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 권고는 곧 우리나라에도 해당할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보호라는 말을 앞세운다고 해도 말이다.

 

보건복지부는 원가정 양육을 목표하는 것이 보호출산제라고 했다. 그런데 보호출산을 선택하는 위기 임산부의 수는 16명에서 6개월 만에 52명으로 늘었다. 그런데도 보호출산제의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는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눈가리고 아웅한다는 것이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인가?

 

보건복지부와 관련 부처는 임신-출산-양육에 대한 보편적 지원을 확대하는 정책 도입에 더욱 힘써주어 위기임산부가 아기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미혼모가 세금충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아기를 키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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