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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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소중한 선택/이정미(가명)2025-01-24 15:12
카테고리소중한 선택
작성자 Level 10

나의 조금 특별한 상황

사람들마다 조금 특별한 상황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도. 아이와 함께 혼자 살기로 결정을 하고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서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자립하고 있는 나의 상황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서울이 아닌 아주 먼 곳에서 아이와 둘이 왔다. 그리고 그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나는 현재 공사현장에서

타일 붙이는 일을 배우고 있다. 기초수급을 받으면서 상황을 좀 더 안정시키고 좀 더 편안히 위기를 넘길 수도 있지만 나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와 주거를 해결하고 나서 바로 자립을 원했다. 기초수급으로는

말 그대로 생활함에 있어 딱~최소한 살 수 있는 만큼만 도와주는 역할일 뿐 그 이상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26개월 아이를 키우면서 식비뿐만 아니라, 속옷 내의 겉옷 외투 신발 목욕제품

간식 문화생활비 장난감 책들 기타 등등... 해줘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해주고 싶은 것은 더더욱 많다.

그래서 더더욱 자립은 필요하다. 어느 한쪽에 기대어서 사는 것이 아닌 풍성하게 아이가 자라나게 도울 수 있도록 하려면 굳건하게 자립해서 열심히 벌어서 살아야 한다. 꼭 겉모습이 아닌 내면도 단단하게 키우려면 안정인 형태를 구축해야 하는데 괜히 부족해서 눈치 보고 탐하는 것이 아닌 넉넉하게 키우면서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내 아이가~


남편에게 공탁금을 걸어놨다. 바보같이 공탁금을 거는 과정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채

아이가 밥 달라고 보채는 통에 나중에 검색해서 알아보면 되겠지 싶어서

대충대충 알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받고선 밥 차리느라 바빴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공탁금을 걸려면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래야만 소송이 진행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신용대출을 알아봐야 했고

내가 잘못한 부분이 없으니 서너 달이면 끝날 문제라고 생각해서 무턱대고 진행을 해버렸다.

그러고는 현실에 부딪혔다.

생활비가 없으니 자꾸 카드를 쓰게 되었고 보험료는 밀리고

그 사람이 먼저 부탁했던 신용대출금을 갚지 않아서 갖고 있던 돈으로 갚고

내가 신청한 신용대출금은 정부에서 나오는 기초 생활수급비로 메꾸길 반복....

그리고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여성 타일 공이 되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왜? 타일을 배우냐고. 내 대답은 적성에 맞아서이다. 그냥 막연하게만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서 진행해 주신 '버크만 스토리'를 통해서 한 번 더 확인을 하게 되었다.

무리에 속하고 싶지만 그 안에서 나의 일을 하고 싶어하고 일할 때만큼은 간섭받지 않으면서 꼼꼼함을 요하는 작업.

그리고 며칠이면 그 결과물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있다.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사람의 손길이 하나하나 닿아야만 결과로 도출할 수 있는 작업.

요즘 꼭 온 세상이 힘내라고 나를 등 떠밀어주는 느낌이다. 너무 감사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힘들어서 지치려고 하면 이따끔씩 어디선가 연락이 와서 도움의 손길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다.

적성검사를 마치자마자 무턱대고 학원부터 등록했다. 아니 현실을 알고 있어서 더더욱 무턱대고 등록했다. 여성타일공을 현장에서 잘 안 쓴다는 사실을 인지해버리면 또 좌절할까 싶어서. 추석 지나자마자 수업은 시작되었고 첫날부터 정신없이 타일을 붙여봤다. 안 쓰던 근육을 쓰느라 그다음 날 아침은 일어나기도 힘들었지만 내 손으로 뭔가를 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학원은 자격증 획득을 목표로 수업을 진행할 뿐 현장과는 매우 다른 형태였다.

일단 수료증만 획득한 채로 몇 날 며칠을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찾기 힘들었다.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남자보다 당연히 힘도 약하고 고작 학원에서 한 달 좀 안되게 배웠는데

현장에서 날 써주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마침 한국미혼모네트워크지원네트워크 유미숙 국장님께서 교회 지인분 중에 소개해 줄 수 있는 분이 있다면서

인사를 드렸다. 며칠이 지나고도 연락은 없었다. 그러다가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 집사님께서 타일 일을 하셨다는 것을 떠올리시고는 그분의 연락처를 수소문 한끝에 연락이 닿아서 어렵게 만나게 되었다. 엄청난 분이셨다. 타일만 46년을 하셨다고 한다.

처음엔 며칠만 일해보고 타일 일 아니어도 일은 많으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때려치워~라면서

부담 없이 나오라고 하셨다. 타일 장인께서 현장에 나오라고 하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실 너무 감사했다.

이 기회 절대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 돌봄

하지만 제일 큰 문제가 생겨버렸다.

일이라는 게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스케줄은 내가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해진 스케줄에 내가 맞춰가야 하는 것인데 우리 아이는 이제 26개월이다.

아이의 등원은 9시 반인데 나는 집에서 5시 반에는 나가야 한다.

첫 전철을 타고 약속된 장소로 나가야 하는데 그럼 우리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약속이 정해지자마자 정부 등원 도우미 사이트부터 갔다. 신청할 수 있는 정해져있는 날짜가 있기 때문에

당장 신청하는 것부터 불가능했고 학원 다닐 당시에도 8시에 집에서 나갔기 때문에 정부 등원 도우미를 신청했는데

혹시 갑자기 필요한 날 연락 줘도 된다 하셔서 전화하니 다른 아이를 맡고 계서서 안된다 했다.

나는 놓치면 안 될 기회가 왔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떻게든 나가고 싶었다.

부모님은... 안된다. 우리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시고 아버지가 어머니 보조를 하고 계셔서 아버지는 어머니 돌보기에도 벅찬 상태이다. 거기다가 아버지 회사까지 가셔야 하니 더더욱 힘든 상황이고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다행히 흔쾌히 들어준다고 했다. 다만 지속적으로 부탁을 할 수 있는 노릇은 아니었다.

아무도 새벽 시간에 일어나서 도와주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친구의 도움은 며칠만 받고 결국 이 부분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았다.

흔쾌히 나의 어려운 상황을 듣고 도와주실 수 있다는 선생님께서 도움을 주시기로 했다.

정부 등원 도우미를 계속 신청해 봤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서비스가 취소되었다는 카톡만 돌아올 뿐이었다.


나는 이 일이 좋다.

이 일이 앞서서 학원에서도 일을 해보고 물건도 팔아보고 서비스직에도 있었고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일을 했었다.

사람이 살면서 하는 일들이니 당연히 사람과 부딪히는 일들이 많은 건 당연했는데

그땐 너무 어렸는지 겉으론 잘 드러내진 않았지만 난 이 부분이 너무 힘들었다.

드디어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것 같고

수많은 일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판국에 이 일만큼은 없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동화가 판치는 세상에 이 일만큼은 사람의 손이 하나부터 열 끝까지 닿아야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 많은 대출금을 갚고 생활비를 벌려면 나는 이 일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은 타일 장인님을 따라만 다니느라 큰돈을 벌수 없지만

알려주시는 대로 습득하고 몇 년 만 참고 따라다니면 나도 고소득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더더 중요한 이유

큰돈을 벌면서 아이의 등 하원을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더라.

일반 직장에 다니게 되면 1등으로 등원하고 꼴찌로 하원해야 되는 형태라

남들보다 조금 일찍 출근해서 남들보다 조금 일찍 퇴근해서

아이에게 잠들기 전까지 집중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등원 도우미 샘'과 '사부님' 그리고 '유미숙국장님'

정말 좋은 등원 도우미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해 주시고 아이를 정말 사랑해 주시는 게 느껴졌다.

사실 일 핑계로 집안일에도 소홀해졌고 일찍 일어나고 몸이 피곤해진 터라 예민해져서 아이에게 작은 일에도 같이 짜증을 내면서 너무 미안했다. 근데 선생님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여유 있게 아이를 대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되었다. 내 주머니가 아무리 비어있어도 가득 차 있어도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순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인지하고 선생님에 대해주시는 마인드를 따라서 아이를 대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함께해 주셔서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큰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기회를 주신 타일 장인. 일명 나의 '사부님'

정말 흔치 않은 기회다. 현장에서 여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여자라서 더더욱 몸 쓰는 요령 같은 어떻게 하면 힘을 적게 들여서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 상세하게 알려주신다. 실수도 웬만해선 대신 티 안 나게 메꿔주시고 다시 알려주신다.

큰 흐름부터 작은 것까지 놓치지 않으려 나도 다녀와서 아이가 잠든 틈을 활용해 메모를 남겨본다.

그리고 나의 처지를 알고 계셔서 함께 아이를 최우선시 해주셔서 말씀만으로도 너무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들을 기회로 만들어주신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유미숙 국장님.

만삭이었을 당시에 무슨 내용의 전화를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가장 힘들고 무섭다고 느낀 시기에 국장님이 떠올랐던 건 내가 정말 도움을 요청하면 응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그때 판단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나와서 다시 사회로 나와서 일원이 될 수 있게끔 이끌어 주신 국장님께 정말 큰 감사를 드리고 싶다.

아이가 걸림돌이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얘 때문이 못해.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마다 여러 가지 방도를 모색할 길을 제시해 주셨고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장님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내게 가장 큰 행운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으로부터 끊임없는 가스라이팅을 당했었다.

'넌 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시험 합격해야 이걸 할 수 있어.' '시험 합격해야 네가 할 수 있는 걸 할 수 있을 거야' '시험 합격하기 전까지 넌 사람이 아니야. 인간 구실 좀 해' '넌 그냥 얹혀사는 년이야 ' 기타 등등...

떠올리기도 싫은... 나쁜 말들로 나의 가능성을 짓눌렀었다.


지금은 나와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아이와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가도록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물론 아직 넉넉하지도 않고 소송도 끝나지도 않았지만 감정적으로 더 이상 억눌려있지 않아도 되고 아이에게 괜찮은 척하면서 거짓으로 꾸민 연기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부족하지만 사랑만큼은 넉넉하게 주고 있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서 희망을 갖고 살수 있다.

아이가 살면서 좋은 일만 있을 순 없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을 수 있겠지.

좋으면 좋다고 마음껏 표현하고 나쁜 일이 있다면 지혜롭고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커나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기면서 살수 있는 마음이 풍성한 사람이면 더더욱 좋겠다.

그렇게 갇혀살고 억눌려 살다가 그런 걸까 먼지 묵힌 베개가 햇살 맞으며 두들기면 먼지 팡팡 날리면서 제 역할을 찾듯이 지금 내 눈엔 온 세상이 밝게 느껴지고 사소한 모든 것들부터 모든 것에 감사드린다. 이 세상에 필요 없는 것은 없다. 다 제각각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내일도 나에게 온 기회들 소중하게 여기면서 나의 삶을 매일매일 디자인하면서 열심히 살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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