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재 18개월 딸을 키우면서 뱃속에는 28주 된 아기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직업으로는 전도사라는 이름으로 백향나무교회에서 청년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23년 7월 더운 여름에 첫 멘티와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는데 마침 비슷한 개월의 아이를 키우고 있던 때라 멘티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멘토를 시작한 지 아직 1년을 채우지 못한 초보멘토로 홀로 아기를 키워야 하는 엄마들과 공감하고 응원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든 가을에 병원에 입원해서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찬바람이 부는 12월이 다가와 있었다. 겨울은 추운 계절이지만 추운 시기를 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인해 따뜻한 계절로 기억되는 것 같다. 병원과 조리원에 있는 3주 동안은 간호사분들께서 잘 케어해 주셨기 때문에 실감이 안 났는데, 산후도우미 이모도 없는 날 혼자 아이를 보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이 조그만 생명체에게 밤새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눈을 잘 부칠 수가 없었다. 새벽 수유도 마치고, 아이도 울지 않고 잘 자고 있는 밤에도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 것인지, 손가락은 코밑에 데고 확인하면서 뜬 눈으로 지켜본 적도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출산했을 때 정작 친엄마는 잘 도와주시지 않았지만 엄마 생각에 눈물을 많이 흘렸다. 내 아이가 전혀 모르는 시간에도 나는 뜬 눈으로 아이를 지켰던 것처럼, 우리 엄마도 내가 모르는 시간에 나를 그렇게 돌볼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마’라는 것은 그렇게 애틋하고 눈물이 나게 하는 단어였던 것이다. 그 생각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미쳤고, 미혼모분들 중에서도 어린 나이에 준비하지 못한 출산을 했을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났다. 아이 하나 키우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많은 도움의 손길들이 필요한데 사계절 중 잠깐 지나가는 겨울이 추운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 모두가 겨울 같이 느껴질까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났던 밤에 꼭 미혼모 엄마들을 위해 무엇인가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아이가 8개월이 되었을 즈음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유미숙국장님을 찾아뵈었다. 만약 국장님을 만났던 첫날에 도울 수 있는 행정적인 물색만 했더라면 마음으로 움직이지 못했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첫 만남에서 국장님의 인생을 듣게 되었고, 어떻게 이 단체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듣고, 아이들에게 대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듣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공감의 눈물로 사람의 연을 이어주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인 것 같다. 그 뒤로 멘토링을 통해 2명의 엄마를 만났고, 캠프를 통해서 5명의 엄마를 만났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하루 반나절 만났던 나영(가명)씨와 그 남자친구와의 만남이다. 나영씨는 유산이 되어서 같이 병원에 동행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 아이도 아직 8개월 밖에 안 되어 어디에 맡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나에게 차가 있어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가 기회라고 생각하고 과감히 결정했었던 것 같다. 나영씨와 단둘이 병원을 가게 될 줄 알았는데 남자친구가 함께했다. 남자친구의 동행이 의외였지만 여자친구의 임신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려는 그 모습이 다행스러웠고, 예뻐보이기도 했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의 일정은 길지 않았다. 의사를 만나서 유산을 확인하고 필요한 약을 처방 받고, 필요 서류들을 챙기는 일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병원까지 편하게 이동시켜주고, 관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병원의 행정절차를 진행해주는 것이었다. 둘은 담담하고 장난끼 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났을까 짐작해보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부모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고 아이로 인해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고민했던 흔적이 보였다. “아이어른”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어른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아직 한참 배우고 실수하고 그 속에서 성장해야 할 나이인데, 어른이 되어서 겪어야 할 과정을 너무 빨리 만나게 되어 어른처럼 보여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함께 있었던 하루 반나절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최대한 그들을 어른으로 대하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호칭도 “~씨”로 존칭을 붙이고 존댓말도 계속 사용했다. 그래서였을까, 자신들의 이야기도 잘 해주고 편한 분위기 속에서 병원 동행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모든 일정이 마무리 되고 헤어지며 좋게 인사를 나누는 그 시간에 나는 노파심에 잔소리를 쏟아내 버렸다. 둘이 앞으로 잘됐으면 좋겠다는 내 입장에서의 좋은 의도였겠지만 그 짧은 순간이 지금까지 후회가 된다. 그때 한 말이 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잔소리를 듣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스쳐지나갔던 경계심은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임신 사실로 인해 어른들에게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을까? 서로의 만남에서 기억되는 것이 잔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응원과 지지를 더 심어줄 것을 그랬다. 그때 짧은 시간에 응원과 지지를 더 보여줬다면 준비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해 그동안 들어왔던 그리고 앞으로 들어야 할 핀잔과 잔소리들을 겪어낼 작은 힘이라도 되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약 1년 동안 멘토링 과정을 통해 (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와 함께 일을 하면서 이 단체에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임신과 출산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겪는 사람들에게 촘촘한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임신 소식과 함께 계속 겨울 같은 날을 지나야 하는 사람들이 이 시기를 따뜻함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사역인 것 같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눈물에 공감하는 눈물로 연결된 사람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